생일 선물 할부

생일 전 날에 사촌동생이 전화를 했다.
"누나, 내일 생일인데 선물 뭐 갖고 싶어? 내가
사주기로 했잖아."
내가 네 녀석 레고를 몇 상자를 사줬냐며 우리도 공평해질 필요가 있다며 이번 내 생일선물은 반드시 으리으리한 걸로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긴 했었다. 그게 올해 초였던가.
사실 진짜 사주리라 생각 못 해서 꽤나 당황했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말을 내뱉었다.
"누나가 큰 게 가지고 싶은데. 시리즈로 말이야. 할부로 사줄 수는 있지?"
"......뭐? 뭐라고?"
그러더니 수화기 저편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막내이모가 무심하게 "그럼 물어봐"하는 소리도 들었고. 일이분 후에 다시 사촌동생이 말하길
"누나, 근데 할부가 뭐야?"
순간 폭소를 참느라 입술을 한두번은 깨물었던 것 같다. 11살짜리 사촌동생의 순진한 질문이 귀여웠다.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비싸서 돈을 오늘 반 정도 쓰고 다음주에 반 정도 쓰는 거야."
"아...... 그럼 반반씩 나눠 내는 거구나?"
"아니야. 1:9로 낼 수도 있고 9:1로 낼 수도 있어. 할부로 사줄 수 있겠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긴 침묵이 이어졌고.
"될 거 같기도 하고......"
혼자서 ㅋㅋㅋㅋㅋ를 얼마나 참았는지 모르겠다. 돼지저금통 배를 가를 거라고 이모부와 대기하고 있다고 말하더니 갑작스런 할부 요청에 난감해하는 목소리라니.
"누나가 엄청 비싼 거 말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엄마가 이번 한번은 모자라는 돈은 도와주기로 했어!"
사촌동생과 나이차이가 꽤 나는데,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사회생활을 어른처럼 하지만 우리 자매 앞에서는 곧잘 아기가 된다.

생일 전날 이유를 모른 채 우울감에 빠져 있었는데 이 짧은 통화로 유쾌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 산다는 건 재미없는 일만 가득한 창고에다 재미있는 일을 한켠에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 생일 선물은 아직 받지 못했다. 사촌 동생이 할부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아직 하고 있는 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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